지난해 민법 개정으로 판단능력이 부족한 사람에 대한 성년후견제도가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특히 기존의 후견제도(한정치산, 금치산)가 피후견인의 재산관리에 편중된 제도였다면 새롭게 시행될 민법은 피후견인의 복리를 증진할 수 있도록 신상보호 영역까지 후견이 확대된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신상보호’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게 확립되어 있지 않아 신상보호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지가 불명확하다. 다만 민법 개정 당시 신상보호를 ‘재산관리 이외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는 개념으로 봐야한다’ 라고만 알려지고 있다.

결국 신상보호는 피후견인의 생명, 신체, 프라이버시는 물론 각종 복지서비스의 이용에 관한 사항 등 매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피후견인의 신상에 관한 사항이 후견인에 의해 남용될 경우 후견제도를 이용하는 사람은 자기결정권은 물론 생명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3일 여의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피후견인 신상보호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갖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주제발제를 맡은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철웅 교수는 신상보호와 관련된 법률을 정비함으로써 인권친화적인 성년후견제도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제 교수는 신상을 ▲의료에 관한 사항 ▲대면, 서신, 전화, 이메일 등 타인과 교유하는 것에 관한 사항 ▲교육, 훈련, 여가 활동 등과 관련된 사항 ▲주거 및 이동에 관한 사항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로 정의했다.

또한 신상 영역에 따른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의사결정에 관련된 정보 이해도 ▲의사결정 시점까지 제공된 정보 기억 유무 ▲의사결정을 위해 제공된 정보 이용 및 비교 능력 등을 제시했다.

이어 제 교수는 신상과 관련해 정비해야 할 법률로 의료행위에 관한 법률과 정신보건법 등을 꼽았다.

제 교수는 “의사와 간호사가 각각 신체를 침해하는 의료행위를 할 때 피성년후견인의 의사결정능력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이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지우는 일이 될 것으로 이들이 실무에서 부딪힐 각종의 사안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 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요보호성인에게 후견인이 없거나 권한 있는 후견인이 없을 때는 요보호성인의 치료에 필요한 동의를 얻기 위해 후견인을 선임하도록 하는 것은 의료행위의 시술을 지연시킬 뿐 아니라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법률로써 별도의 동의권자(친족,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등)를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이외에도 제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은 기본적으로 강제치료를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며 정신병원 등에서의 입원 및 정신병의 치료와 정신보건법에 따른 입원 및 정신병의 치료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어 “이를 위해 단순한 치료, 요양 목적의 입원은 민법에 의해 규율 되도록 하고 자해 및 타해 위험성이 있거나 본인의 건강에 중대한 침해가 있을 수 있는 사안에만 정신보건법을 적용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법상의 부야의무는 피부양자가 노력부족으로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때 피부양자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정신보건법에 정한 보호의무자 개념을 민법상의 부양의무자의 개념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제 교수의 발제에 토론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김명실 소장은 “신상보호 영역이 생명이나 건강 또는 거주에 관한 부분만이 아니라 일상생활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 재산관리의 성격과 달리 서비스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2년 한국사회복지협의회의 ‘장애인 성년후견제 운영방안 마련연구’ 조사에 나타난 성년후견제에 관한 장애부모의 기대 내용을 살펴보면 ‘장애인 및 가족의 고민해결(77.1%), 장애인 전반에 걸친 적절한 서비스 제공(58.5%), 장애인의 인권 및 권리보호(55.7%)순으로 ’그렇다‘라는 응답을 보였다는 것.

이어 김소장은 “발제자가 의사결정능력에 장애가 있으며 후견인 비용을 부담하지 못하는 요보호성인을 위한 별도의 제도를 만들고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지만 결국 비용부담 능력 유무에 따른 2중 구조의 운영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선별적이고 차별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비용지출은 제도도입을 위해 불가피 한데 추가적인 비용지출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배우자나 직계 존·비속, 심지어 시설장에게 사실상 사무처리를 맡도록 하는 성년후견대체제도를 입법화 하는 것은 자칫 성년후견제도의 취지를 몰각시키고 작금의 금치산·한정치산제도와 같이 사문화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닐지 우려 된다”고 피력했다.

이어 염 변호사는 “발제자의 지적대로 급박한 상황으로 인해 성년후견인 선임이 불가능하거나 성년후견인 선임이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사무처리가 필요한 상황이 야기 될 수 있는 만큼 사무의 범위 등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최윤영 교수는 “강제입원 치료와 관련해 성년후견인의 동의안과 성년후견인이 없는 경우를 대비한 가칭 ‘정신감정 및 강제입원 심의위원회’를 거쳐 강제입원에 대한 폐해를 예방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팀 이재란 팀장은 “조만간 발표될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및 지원계획에 개정법 등에 대한 내용도 추가해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성년후견제 대상은 80~100만 사이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며 “최종예산은 국회에서 결정하지만 예산반영을 위해 기획재정부와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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