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얼마나 춥고 움츠렸던 겨울이었던가. 입춘이 가고 우수를 지나고 이제 청명 한식도 지나 곳곳에 봄꽃이 활짝 피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또 봄이 왔다. 이처럼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음에도 봄을 느낄 수 없었음은 먼 나라 전설 같은 왕소군(王昭君) 뿐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4일 부산 기장군에 사는 김모(49) 씨는 다운증후군 아들(20)을 죽이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씨는 10년 전 부인과 헤어진 뒤 홀로 아들을 키웠고, 아들을 특수학교에 보내고 집안일까지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다운증후군 아들은 지난달에 집 가까운 특수학교(고교 1학년 과정)에 입학했다. 아침에는 김 씨가 챙겨서 오전 8시 집 앞에서 특수학교 통학버스에 태워 보냈고, 학교가 끝나고 귀가하는 시간부터는 활동보조인과 시간을 보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홀로 장애아들을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유서를 남기고 먼저 갔다. “장애 아이를 키우려면 이 모든 것을 이겨내야 하지만 이제는 지쳤다.” 혼자만 간 게 아니라 아들까지 데리고 갔다. 

「동료 경찰관은 "김 경위가 집안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아 장애인 아들이 있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며 "항상 웃으면서 일했고 업무도 주도적으로 추진해 모범적인 직원이었는데 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연합뉴스 2016-04-04)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는 이미 갔으니 명복을 빌 뿐이다. 그러나 이 땅에는 아직도 수많은 장애인들과 그들의 가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왜? 몇 가지 의문점은 지울 수가 없다.

장애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과 노력으로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어 지난해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발달장애인법 제26조에는 평생교육을 명시하였고, 발달장애인지원센터 등이 설립되고 있다.

김 씨가 경찰관이라면 누구보다도 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터이고, 설사 법이 아직은 미흡하다 하더라도 그 법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의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짐작컨대, 아무에게도 자신의 고충을 털어놓지 않고 꽁꽁 숨긴 채 혼자서만 속앓이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지적장애 1급인 아들이 받은 활동보조이용시간이 104시간이라고 했는데 104시간이라면 한 달에 26일이고 하루에 4시간이다. 활동보조인이 가고 없는 시간에 장애아들을 혼자 둘 수가 없어서 바깥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경찰관이라면 부양의무제 때문에 장애아들이 1급이라도 장애연금도 못 받았으리라. 

그래도 찾아보면 어딘가에 길은 있을 것이고 정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행여 길 찾기를 포기한 것은 아닐까. 장애아들의 아버지라는 것을 차마 세상에 드러내기가 두려웠던 것은 아니었을까.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봄밤에 장애아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애 태우며 홀로 울었을까. 생각하면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지만 장애는 당신의 죄도 아니고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왜 혼자서 그 짐을 다 지려 했는가?

장애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가족이나 친인척이라도 활동보조인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더 늦기 전에 부양의무제도 폐지되어야 한다. 부정수급 때문이라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다 태우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간보호나, 단기보호, 그룹홈 등 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24시간 장애인이 마음 놓고 거주할 수 있는 그룹홈 같은 생활시설이 더 많이 확충되어 부모들이 언제든지 이런 시설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마침 선거철이다. 후보자들은 표를 얻고자 하는 탐욕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웃의 고통이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복지를 이루고자 하는 굳은 의지와 용기로 누구라도 당선이 되면 공약(空約)이 아니라 실제로 제도를 만들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계절이 바뀌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다. 사람의 일생에서 생로병사 또한 자연의 섭리이다. 누군가 그랬다. 장애도 개성이라고. 장애도 개성이라면 자연의 섭리일 수도 있다. 지금도 장애 아이 때문에 울고 있는 부모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 봄에는 정말 봄을 봄답게 만끽하면서 ‘저 좀 도와주세요.’ 손을 한 번 내밀어 보시기를.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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