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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중증 장애인, 18년간 시설생활…이제 그와 산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불평등·기후변화에 맞서 싸워야 정의" 지금 국회 권력투쟁의 막장드라마…위선과 기만 밝혀질 것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9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2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 ‘탈시설’이란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탈옥과 비슷한 개념일까? 그렇다면 시설은 뭐지? 시설의 사전적 의미는 ‘도구, 기계, 장치 따위를 베풀어 설비함’이다. 그런 시설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일까? 30살의 언니는 경기도 여주의 산속 외딴 건물을 찾아갔다. 그 건물은 장애인 보호시설이다. 그 곳에서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나왔다. 그 동생은 중증 장애인이다. 이미 18년간 가족과 떨어져 그곳에서 살았다. 그런 동생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4년전이다. 그리고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바로 ‘탈시설’이라고 한다.
언니는 그때를 이렇게 표현했다. “다르고 연약하다는 이유로 한껏 세상의 구석으로 밀쳐져 이제는 거의 잊혀진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곳에 살고 있었어요. 그곳은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장소였어요. 시설은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안전하게 죽음에 이르도록 보호하는 곳이었어요.” 언니는 탈시설한 동생과 힘든 생활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이 사회는 철저히 비장애인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 사이에서 장애인들은 차별받고, 격리된다. 언니는 그런 사회를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비장애인들이 사는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동생과 같이 산 첫 6개월간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어 공개했다. 그 영화는 많은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의 가족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스웨덴은 2000년부터 모든 장애인 시설 폐쇄…지역사회서 함께 산다
이렇게 반문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 틈에 사는 것보다 시설에 격리돼 사는 것이 서로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언니는 스웨덴을 예로 들었다. 스웨덴은 30여년전인 1997년에 시설 폐쇄법이 제정됐고, 1999년 12월31일을 기점으로 모든 시설이 실제로 폐쇄됐다. 시설에 격리됐던 모든 장애인들은 지역사회로 돌아갔다. 당시 스웨덴 보건복지부 한 직원이 시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학대와 인권침해를 폭로하며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조성되었고, 그 어떤 중증 장애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모두 같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됐다.
그 언니는 지난해 총선에서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장혜영(34) 의원이고, 동생은 장혜정(33)씨이다. 장 의원은 장애인 복지를 추구하고 청년, 여성의 대표 자격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지금 한국 정치의 핵심 세력인 586세대가 대학에서 민주화를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1987년에 태어났다. 장 의원은 “586세대의 정의가 독재와 맞서 싸우는 것이었다면,지금의 정의는 불평등과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지난달 2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난 장 의원은 정치판에 들어선 것을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고 했다. 비록 7개월의 짧은 시일이 지났지만 스스로의 의정 활동을 ‘차분하고 급진적이었다’고 정의했다.
“정치인이 되기 전 ‘생각이 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를 운영했다. 생각이 많다고 한 이유는?”
-어릴 때부터 생각을 많이 한 것 같다. 정확하게, 후회할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생각을 많이 했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쓰며 생각을 정리했다. 대학 다닐 때 도서관의 철학책을 모아 놓은 서고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유대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한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1906~1975)를 좋아한다.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홀로코스트를 경험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그는 전범 아이히만 재판을 본 뒤, 반성없이 명령에 따르는 개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악에 기여하는지를 설명하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말했다. 자신의 발언에 숱한 오해와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옳고 그른 것이 행동의 중심이 돼야 하는 것이지, 남들의 생각에 행동의 비중을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 인물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의정 보고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2020.12.2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왜 국회의원이 됐나?”
-‘지쳐서’ 였다. 이전에는 창작자의 삶을 살았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만들고, 노래도 부르고, 유튜버로도 살았다. 그런데 공공의 화두를 갖고 길거리에서 소리를 질러 보았지만 무력했다. 장애인 관련 제도와 법규를 고치려고 길거리에서 소리치고 애를 써 보았지만 허사였다.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정치인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국민청원을 하며 지쳐가다가, 정의당에 입당 권유를 받았다.
◇동생 '탈시설' 뒤 함께 사는 모습 다큐로…보신 분들이 유쾌해 했다
“정치인이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나?”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회라는 권력은 매우 중요하다. 같은 이야기를 카페에서 친구들과 하거나 길거리에서 외치는 것과 국회 상임위에서 경제 부총리 앞에서 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국회의원의 말 한마디가 체계를 움직이는 곳을 보고 감동하기도 했다. 민주주의가 권력을 움직이는 방식을 보았다.
“동생은 국회의원이 된 언니를 어떻게 바라보나?”
-동생은 발달장애와 지적 장애, 자폐성 장애가 있는 중증 장애인이다. 동생은 언니가 국회의원이 된 것을 너무 좋아한다. 왜냐하면 같이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어 언니의 잔소리를 덜 듣기 때문이다.
“18년간 장애인 시설에 있던 동생을 사회로 데려와 함께 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무슨 계기가 있었나?”
-아주 어릴 때부터 동생을 돌보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3~4살 때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때부터 여동생을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날 여동생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시설로 옮겨졌다.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며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헤어져 있으면서도 항상 동생이 걱정됐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로 부터 격리돼 사는 것은 부당하다. 같이 살기에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내가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에 대한 돌봄을 오직 가족에게 전가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1년간 탈시설을 준비를 했다. 자주 시설에서 데리고 나와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했다. 탈시설을 한 뒤 함께 사는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었다. 5000만원 정도의 제작비는 크라우딩 펀드로 모았다. 6개월 찍고, 2개월동안 후반 작업을 해서 <어른이 되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보내지는 현실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길 바랐다.”
“왜 제목이 <어른이 되면>인가?”
-동생의 입버릇이 ‘어른이 되면 해 줄거지?’였다. 장애인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동안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면 생활 보호사들이 만류를 하며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이미 나이는 성인인데 영원히 미숙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다큐가 완성되고 펀딩을 해주신 분들게 시사회 티켓을 보내드렸다. 그런데 다큐를 보고난 뒤 대부분 관객이 유쾌해 했다. 영화가 장애인을 다룬 것이니까 무지 슬프거나 감동을 받아 펑펑 울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는데, 다들 깔깔 웃고 나왔다. 비장애인과 장애인들과 평범하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유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주제곡(OST)을 직접 만들어 불렀다. 제목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이다. 제목의 뜻이 무엇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의 표현이다. 실체가 있는 불안이다. 이대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면 동생과 내가 무사히 할머니가 될 때까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종종 들었다. 젊어서 돈을 벌어놓지 못하면 병들어도 치료를 못받고 삶이 곤두박질친다. 그래서 과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라는 곡을 만들었다. 다큐 제작 당시 돈이 없어 주제곡을 살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작사, 작곡하고 불렀다.
 장혜영 의원이 기타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2020.12.29/© 뉴스1 이길우 객원대기자
“한번 불러 줄 수 있나?”
마침 사무실 한 켠에 기타가 놓여 있었다. 그는 한치의 망설임없이 기타를 집어들었다. 마치 노래하라고 주문해 주길 가다렸다는 듯이…. 그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가사가 쉽게,그리고 절절하게 와 닿는다. 다음은 노래 가사 전문이다.
◇나보다 못한 사람 밟고 올라가는 학교 싫어…연세대 4학년때 자퇴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죽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나이를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아/상냥함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울 뿐/모두가 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흐르는 시간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네/라라리 라라리 라라리 라리라라
언젠가 정말 할머니가 된다면/역시 할머니가 됐을 네 손을 잡고서/우리가 좋아한 그 가게에 앉아/오늘 처음 이 별에 온 외계인들처럼/웃을 거야/하하하하.
개성있는 보컬과 노련한 기타 솜씨는 기성 통기타 가수 못지 않았다. 서버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초반 탈락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연세대 신문방송과를 중퇴했다. 왜 중도에 포기했나?”
-대학 졸업을 하기 싫었다. 8학기를 마쳤고, 학점을 조금 더 따면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나보다 못한 사람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쳇바퀴의 굴레에 편입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식으로는 동생은 커녕 나 하나도 건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시간의 주인이 내가 아닌 상황에서 일단 멈추고 싶었다.
그는 지난 2011년, 고려대생 김예슬, 서울대생 유윤종에 이어 세번째로 자퇴를 선언한 이른바 ‘명문대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자퇴를 하며 붙힌 대자보의 제목은 ‘공개 이별 선언문’이다. “새들에게 날개의 자유가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우리에게는 스스로가 믿고 사랑할 것을 선택할 자유, 그렇게 선택한 아름다움을 지켜낼 자유, 즉 ‘사랑에의 자유’가 있습니다… 잎사귀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선배를 둔 우리가 사랑 앞에 자유롭지 못하다면 그 누가 한 점 부끄럼 없이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이제 연세가 아닌 다른 사랑을 향해 떠납니다.”
“정치에 입문한 뒤 하고픈 일을 했나?”
-장애인 관련 다큐를 찍은 것이 정치 입문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국회 소통관에 수화 통역사를 상시 배치한 일이다. 소통관은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인데 수화 통역사가 없으면 듣지 못하는 이들은 자연히 배제된다는 뜻이다. 장애인들에 대한 활동지원 서비스를 65세가 지나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는 만 65살이 지나면 받을 수 없어 `현대판 고려장'으로 불리는 독소조항이 있는데 그것을 개선했다. 포괄적 차별방지법을 대표 발의해 지금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본인이 경험한 여의도 국회는 어떤 곳인가?”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지만, 그 가능성을 땅바닥에 패대기 쳐놓고 권력 투쟁의 막장드라마가 펼쳐지는 곳이다. 만약 지금의 여의도를 영화로 찍는다면 ‘벌거벗은 임금님’이다. 아무도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이야기를 하지 않듯이, 누구도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어린아이가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하하 웃으며 진실이 밝혀지듯, 이 막장 드라마도 위선과 기만이 밝혀질 것이다.
“매일 국회에 출근하며 어떤 마음이 드나?”
-아직 적응이 안된다. 저 푸른 뚜껑(지붕)의 건물에 출근하다니….낯설기만 하다.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다닌다. 배지를 달지 않으면 출입을 못하게 막는다. 경비 서는 분들이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29일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0.12.2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최근 ‘내가 이제 쓰지 않는 말들’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무슨 프로젝트인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추진하면서 14명의 작가들과 시작했다. 내가 말하기 전, 행동하기 전 누군가를 나도 모르게 차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들을 모으는 작업이다. 예를 들어 ‘아 답답해, 암에 걸리겠다’라고 말하면, 답답한 현실을 빗대어 이야기 한 것이지만 실제 암과 투병하는 이들에겐 큰 아픔이 된다. 한 국회의원이 상임위원회에서 ‘이것은 절름발이 정책입니다’고 발언했을때, 절름발이라는 용어가 신체 장애인들을 얕잡아 부르는 말이라고 지적해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또 ‘너무 여자같아’, ‘여자가 남자 같이 축구를 잘해’, ‘게이 같아’라고 말하는 것도 그릇된 성적인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말들이다. 나에겐 당연하고 자연스런 말들이 누군가에는 차별의 경험이 될수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여의도의 가장 큰 벽…소수의 목소리 외면
“한국 정치판에서 경험한 가장 큰 벽이 있다면?”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의견이 다른 이들을 전쟁을 통해 몰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민주적 제도를 통해 공통분모를 뽑아내는 것이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미 갖고 있는 기득권을 이용해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중년 남성의 기득권 정치’이다. 청년의 목소리, 여성의 목소리를 내기 힘들다. 청소년 때부터 정치 참여를 배제시키고, 터부시하는 교육을 한다.
“정치를 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주저말고 지금 당장 정치를 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적을 취득할 수도 있고, 공개적으로 글쓰기를 해도 된다. 2022년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계획을 세워도 된다. 중요한 것은 지금 무엇이라도 시작하는 것이다.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되고 싶나?”
-장애인 관련한 문제를 풀기 위해 정치인이 됐다. 장애인의 탈시설법을 법제화하는 것이 당면한 목표이다. 하지만 이것은 3점슛 한번 성공시키는 것이다. 코트에서 경기를 이겨야 하고, 시즌을 이겨야 한다. 눈앞의 펼쳐진 불평등을 해소하고, 시민들이 평등하고 존엄한 삶을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는 비장애인만을 ‘인간’으로 취급하는 사회에 맞서 장애인들이 온전한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순간을 투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런 투쟁을 오롯이 장애 당사자와 그 가족의 것으로 넘기는 것은 잔인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그런 잔인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이다.
kichen8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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