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탈시설” 외침에 12년만에 응답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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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8.02. 오후 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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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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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활동가들이 본 정부 로드맵
시설 비리 폭로 뒤 자립의 길
김동림·하상윤·김진수씨 등
“정부 정책 느려도 너무 느려요”

100대 국정과제 임기말 청사진
20년간 지역사회 정착 지원 뼈대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시작했던 김동림씨(앞쪽부터)가 동료 한규선씨와 함께 지난 4월 시설폐쇄를 앞둔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양곡리 향유의집(옛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찾아 시설 거주자들이 남겨둔 작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김포/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장애인 거주) 시설에 있을 때는 그곳이 한없이 크게 보였는데, 지역사회에 나와 보니 그 시설이 너무나 조그맣게 보이더라고요. 다른 시설 장애인들도 저처럼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있는 지역사회로 빨리 나왔으면 하는데, 정부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느려도 너무 느려요.”

12년 전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탈시설’한 김동림(58)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2일 정부가 내놓은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이 “장애인들에게는 너무 늦은 대책”이라고 거듭 말했다. 김씨는 지난 2009년 국내에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첫발을 내디뎠던 ‘마로니에 8인’ 가운데 한 명이다. 이들은 그해 6월 경기도 김포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을 나와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횡령 등 시설 비리를 폭로하며 농성을 시작했다. 아울러 “더는 시설에서 살지 않겠다”며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생활을 세상에 요구했다. 덕분에 처음으로 탈시설 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주택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싸움이 있고 12년이 지나고서야, 정부는 이날 ‘로드맵’ 형태의 탈시설 장애인 지원을 위한 중장기 방안을 처음 세상에 내놨다. 이날 김부겸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23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 확정된 로드맵을 보면, 정부는 2022년부터 3년간 제도정비와 인프라 구축 등 시범사업을 하고, 2025년부터 2041년까지 해마다 740여명씩 지역사회 정착을 단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이는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차단된 채 인권침해를 겪을 소지를 줄이고,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인격적 존재로서 좀 더 자유로운 자립생활을 하도록 지원한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들에게 ‘공동형 주거’와 ‘개별형 주거’를 지원하고, 자립 전 중간 단계인 ‘체험홈’도 제공한다. 정충현 복지부 장애인 정책국장은 “공동형 주거지원은 하나의 아파트에 장애인 3~4명과 배치된 전담직원이 함께 사는 형태이고, 개별형은 장애인이 단독으로 거주하면서 방문서비스가 이뤄지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시설거주 장애인을 대상으로 연간 한 차례씩 자립 지원을 희망하는지 묻는 조사가 시행된다.

마로니에 8인 가운데 김동림·하상윤(48)·김진수(71) 세 사람은 이런 ‘탈시설 정책’의 청사진이 제시된 점을 반기면서도, 정책 실현 속도와 의지에 우려를 나타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역대 정부 중 처음으로 ‘장애인 탈시설 등 지역사회 정착 환경 조성’을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시켰다. 이후 2018년 2월부터 민·관 협의체로 정책 협의가 시작됐지만,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야 정부의 청사진이 나왔다.

김진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71)은 “정책도 늦게 나왔는데, 이날 발표된 로드맵에서는 탈시설을 매듭짓는 데 20년이나 걸린다고 하니 너무 길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68명이 공동 발의한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안’은 장애인 거주시설 단계적 축소 기간을 ‘10년 이내’로 제시했다.

석암요양원에서 나오기 전까지 20년간 시설에서 생활했던 김진수 소장은 이날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보면 눈치 보기만 상당하다”며 “발달장애인이든 지적장애인이든 절대 (나와서) 못사는 게 아니다.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없고 인권 유린도 자주 벌어지는 시설에 장애인을 두려 하기보다 지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제대로 지원을 하는 게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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