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활동에 가치부여 하니… ‘집’ 대신 ‘밖’으로 나왔다

김태희 기자 2024. 1. 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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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훈씨가 2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의 집에서 운동일지를 보여주고 있다. 김태희기자

“오늘은 아침 먹고 꽃에도 물주며, 중앙동에 렌즈(사러 가고), 다이소 들르려고 함.”

지난 2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의 한 주택에서 만난 하명훈씨(24)는 이날 일정이 가득 적혀있는 노트를 들어 보였다. 그는 지난해 본격적으로 운동하기 시작한 뒤부터 노트에 하루 운동량을 기록했다. 유산소 운동을 주로 하는 하씨는 그날 어디를 갔는지, 얼마큼 걸었는지 등을 일지에 적었다. 근력 운동을 한 날에는 횟수를 적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적장애가 있는 하씨는 경기도의 ‘장애인 기회소득’ 지급 대상자다. 장애인 기회소득은 월 5만 원씩 최대 6개월간 총 3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대신 장애인은 스마트워치를 착용해서 1주 최소 2회 이상, 1시간 이상 활동하고 움직여야 한다. 장애인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운동을 통해 건강해지면 그만큼 사회적 비용(의료비·돌봄비용)이 감소한 것으로 본다. 지방자치단체가 장애인 활동을 가치 있다고 최초로 인정한 사례다.

하명훈씨의 체중변화. 하명훈씨 제공

하씨도 장애인 기회소득을 지급받기 전까지는 일상 속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사귀던 여자친구와 이별한 뒤 우울증과 불면증을 겪었다. 복용 약의 부작용에 안 좋은 생활습관까지 더해지면서 90㎏ 정도였던 그의 몸무게는 100㎏ 가까이 늘었다. 다이어트도 몇 번 시도했지만, 동기가 없어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던 와중에 접한 것이 장애인 기회소득이었다. 하씨는 “움직이지 않으면 지원금이 나오지 않으니 처음에는 억지로 운동을 했다”면서 “그러다가 차츰 운동에 재미를 붙였다”고 했다. 가벼운 걷기부터 시작해 운동량을 점차 늘려 지난해 말 몸무게를 68㎏까지 감량했다.

현재는 70kg대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최근 근력 운동도 시작해 몸에 근육을 붙이는 재미를 보고 있다고 했다. 기회소득으로 받은 돈은 좋아하는 스포츠 의류나 운동화를 사는 데 썼다.

하씨는 “이젠 운동이 하나의 습관이 됐다”면서 “몸무게를 줄이고 건강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달성했으니, 올해에는 여자친구를 사귀어 함께 걷고 싶다”고 말했다.

하명훈씨가 2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의 집에서 기회소득으로 산 운동복을 보여주고 있다. 김태희기자

정신장애가 있는 남기택씨(50)는 한 때 우울증을 앓았다. 1주일에 4000걸음도 걷지 않을 정도로 집에만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장애인 기회소득을 받고 난 뒤 다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집밖으로 나와 몸을 움직이면서 우울증을 극복한 그는 새로운 직장도 얻었다. 지난 2일 첫 줄근했다. 남씨는 “기회소득 때문에 매일 조금이라도 걸으려고 노력했다”면서 “몸을 움직이니까 우울한 기분도 많이 나아졌고, 다시 일어서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경기도 장애인 기본소득을 받은 이는 총 7000명이다. 경기도가 참여자 중 2000명에 대해 활동변화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참여자 중 68.6%가 최소 주 2회 이상(가치활동 인정 기준) 운동하는 데 성공했다. 신체활동 변화를 보면 기회소득 지급 전 비활동적(주 1회 이하 운동)으로 분류된 장애인은 1730명(86.5%)이었지만, 지급 이후 543명(27.2%)로 크게 줄었다. 그만큼 장애인들이 집 밖으로 나와 활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도는 올 하반기부터 장애인 기회소득을 월 10만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또 최대 12개월간 총 90만원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지원 규모도 1만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기회소득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지만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대상에게 일정 기간 소득을 보전해 주는 김동연 경기지사의 대표 정책이다. 경기도는 지난해 장애인과 예술인 등 2개 분야에서 기회소득을 지급했다. 올해는 체육인·농어민·기후행동·아동 돌봄 등까지 총 6개 분야로 확대해 추진한다.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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