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 명칭이 생소하고, ‘장애인의 날’이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면 ‘장애인복지법’에는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한 법정기념일로 ‘장애인의 날’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1972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4월 20일을 ‘재활의 날’로 기념하던 것을 정부에서 1981년부터 ‘심신장애자의 날’로 지정했고, 1982년부터는 다시 그 명칭을 ‘장애인의 날’로 변경했다. 실제로 4월 20일이 되면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장애인 복지유공자 포상, 장애인 ‘극복상’ 시상, 축하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런 행사들의 취지는 좋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행위는 장애인을 ‘이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타자화하고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자’로 대상화하게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결국, 장애인들은 시혜와 동정으로 얼룩진 장애인의 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1987년 6월 항쟁과 7, 8, 9월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며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비극이 아닌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장애인 운동이 태동했다.

여러 장애인단체들은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고, 이날을 기점으로 장애인에 대한 차별철폐를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물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장애인들이 시혜와 동정의 대상이 아닌 운동의 주체로 싸운 덕분에 이동권, 탈시설·자립생활 권리, 주거권 등 많은 영역에서 큰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진전에서 소외된 채 아직도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신장애인들이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명시되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모든 국민”에 정신장애인이 설 자리는 없다. 정신장애인은 격리·강박, 면회·통신의 자유 등 헌법상 기본권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제한되거나, 본인이 거부해도 강제적인 약물치료가 이뤄지고 있다. 또한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격증 취득에서 배제되거나, 자·타해 위험성을 이유로 본인의 의사에 반한 강제 입원이 이뤄지기도 한다.

강제 입원뿐만 아니라 장기간 입원도 심각한 문제이다. 보건복지부가 2019년에 발표한 ‘국가 정신건강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을 기준, ‘정신 및 행동 장애 환자의 재원 기간’은 벨기에는 9.3일, 프랑스는 23.0일, 이탈리아는 13.6일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76.4일로 여타 OECD 회원국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

이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들은 소득이나 고용에서도 가장 열악한 위치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살펴보면, 2020년 기준 전체 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411만 원이고, 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99만 원이다. 하지만 정신장애인 가구는 장애인 가구 평균보다 60만 원가량 더 적은 141만 원으로 나타나, 전체 장애유형 중에서도 최하위이었다.

또한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고용 상황도 심각하다. 장애인 인구대비 취업자 비율(고용률)은 29.5%인데, 이는 전체 인구의 취업자 비율인 60.4%의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정신장애인의 고용률은 이보다 훨씬 낮은 5.3%로 나타나 이 또한 전체 장애유형 중 최하위였다.

자, 다시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돌아오자. 여러 장애인단체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명명하기 시작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을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이제 이 선언이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우렁찬 목소리로 전국에 울려 퍼질 수 있도록 지지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보자.

아직도 많은 장애인이 차별적인 현실에 힘들어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정신장애인이 가장 심각한 차별과 싸우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21년 ‘장애인복지법’ 제15조가 폐지되기 전까지 정신장애인들은 장애인복지법상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에서도 배제되고 있었다.

이제는 정신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열악한 현실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는 명칭에는 장애인들이 동정과 시혜, 선행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고, 시민의 권리를 회복하겠다는 투쟁의 결의가 담겨 있다.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전국의 수 많은 정신장애인들이 고립과 억압을 뿌리치고 뛰쳐나와 모든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한목소리로 장애인 차별철폐를 외치는 그 모습이야말로 ‘장애인의 날’이 진정으로 기념해야 하는 최고의 행사가 될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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