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주 성루가 병원 재활병동 차량 이동 훈련을 위한 택시. ⓒ정봉근

장애인들의 자립생활과 직업, 사회활동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서 과연 어떤 부분이 먼저 다뤄져야 할 것인가? 국내에서 장애인 등급제가 핫이슈로 다뤄지고 있는 요즘 그 대안을 미국의 재활 의료 시스템을 통해서 살펴본다.

▲세계보건기구에서 2001년 부터 사용하고 있는 국제 기능 장애 건강 분류 ICF 모델. ⓒ정봉근

전 세계적으로 장애의 진단과 평가는 의학적 진단을 기초로 하고 있다. 이유인 즉 대부분의 장애는 신체 기능의 저하나 신체 부위의 손상 등으로 기원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설명은 세계보건기구 WHO 에서 발표한 ICF (국제 기능 장애 건강 분류)모델을 살펴 보더라도 잘 알수 있다.

장애의 기원이 되는 신체의 구조와 기능에 대한 진단을 토대로 장애인이 어떤 활동과 참여에 제한이 있는지를 장애의 분류 기준으로 나타냄으로써 개인별 재활의 의지와 사회 참여의 욕구를 보다 자세히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 ICF의 장점중에 하나이다.

ICF 모델은 기존의 신체적 손상이나 기능 저하에만 중점을 두었던 의료적 모델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실질적인 자립생활의 제한점을 찾아내고 제한요소를 감소시키는 사회적 모델을 함께 포함함으로써 전 세계 장애 관련 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널리 사용 되고 있다.

▲미국 조지아주 셰퍼드 센터 재활병원은 장애인용 골프 퍼팅장을 마련해 두고 치료에 사용하고 있다. ⓒ정봉근

이런 국제적인 흐름은 미국의 재활병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장애인들이 실제 생활하게 될 주거 환경이나 지역사회 환경에서 마주칠 수 있는 다양한 공간 및 시설을 직접 병원안에 마련해 두고 의료진들이 훈련 및 치료에 적용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상생활동작(ADL) 훈련이라고 불리는 이 재활치료과정을 토대로 퇴원 후 장애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환자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다른 사람의 도움은 어느정도 필요로 하는지 직접 평가하고 있다. 가장 기본적인 옷입기, 양치질 하기, 세수하기, 샤워하기 등이 가능하도록 직접 환자의 병실, 샤워실, 화장실에서 수행 능력을 평가하며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보조도구가 필요할 때에는 이를 기록하고 처방하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일상생활동작이 가능하게 되면 환자는 병원안에 마련된 모델 홈에서 침실, 부엌, 세탁실 등 다양한 가사 활동을 직접 체험하게 된다. 이 때에도 독립적으로 얼마만큼 작업의 수행이 가능한지를 평가하고 기록하게 되며 혼자 힘으로 수행에 어려움이 있을 때 장애 요소를 줄일 수 있는 별도의 방법을 처방받게 된다. 재활보조기기의 구입, 주택 개조, 인간공학적 가구의 구입, 활동 보조인의 필요 유무에 대해서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게 된다.

▲미국 미네소타주 마요 클리닉 재활병동 ADL 훈련실. ⓒ정봉근

미국 재활 병원에는 택시가 있다

장애인이 휠체어에서 택시로 이동하는 기술을 연습하기 위해서 치료실 내에 직접 택시를 가져다 놓았다. 이 택시는 장애인들의 운전 재활을 위해서도 함께 사용된다.

택시 앞에 가상 스크린을 설치해 두고 차량 안에서 직접 운전능력평가 및 훈련도 가능한 것이다.

교통 사고 이전에는 휠체어를 한번도 사용해 본 경험이 없는 환자들의 경우 혼자 힘으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버스 등 대중교통 수단을 어떻게 이용해야 할지 두려움이 앞선다.

이들을 위해 병원 안에는 실제 버스모형을 제작해 두고 버스용 휠체어 리프트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퇴원 후 바깥 생활에서 어떤 제한점을 가지게 될 지 의료진들은 직접 병원 안에서 평가 및 훈련이 가능한 것이다.

▲미국 워싱턴 DC 국립재활병원 재활치료실 훈련용 택시. ⓒ정봉근

이밖에도 차가 없으면 아무대도 갈 수 없는 미국의 문화를 반영하듯이 주유소 모형이 병원에 설치되어 있다. 직접 주유를 체험해 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평가할 수 있다.

미국의 재활병원은 실제로 병원에 머무르는 환자들이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기술을 직접 훈련시키고 가르치는 역할 까지 함께 하고 있다. 더이상 장애인들을 환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일상생활기술을 하나 하나 챙기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 재활 훈련 시설. ⓒ정봉근

어린 나이에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입게된 아동 환자들을 위해서 맥도날드와 같은 각종 페스트 푸드 점 모형을 설치해 두고 음식을 주문하는 법,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있다. 울퉁불퉁한 커브 및 경사로, 은행 현금지급기 사용, 경사로에서 휠체어 사용까지 다양한 환경을 아동 환자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 아동병원에는 울퉁불퉁한 커브 및 경사로, 은행 현금지급기 사용, 경사로에서 휠체어 사용까지 다양한 환경이 아동 환자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어져 있다. ⓒ정봉근

치매, 중풍 등 노인성 질환 환자의 경우 신체적인 기능 제한 뿐만 아니라 인지 기능에도 어려움이 생길 수 있는데 이들의 일상생활활동의 참여를 유지하고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병원 안에는 시장 모형을 마련해 두었다.
병동안에 슈퍼마켓을 그대로 마련한 것이다. 쇼핑 카트며 계산대 할것 없이 모두 실제 환경과 똑같이 제현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장애인 들은 혼자 힘으로 시장 보기가 어느정도 가능한지 평가를 받을 수 있고 그 결과에 따라 활동 보조인의 필요성이나 간병인의 도움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뉴욕시 성루가 병원 재활치료실 안에 마련된 마켓 모형. ⓒ정봉근

국내 재활병원에서는 왜 이런 시설은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아직까지 국내 재활병원에서는 국립재활원을 제외하고는 장애인의 사회활동 참여를 지원할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전무한 실정이다.

현실에 맞지 않게 낮게 책정되어 있는 재활치료 수가도 문제이지만 지나치게 장애에 대한 병리학적, 의료적 처치에만 치중하고 있는 국내 재활 의료시스템에서 문제점을 지적 할 수 있다.

선진국 수준의 재활의료서비스를 위해서 보다 적극적인 재활의료서비스의 제공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애인들이 최대한 빨리 기능을 회복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병원 의료 기관에서 부터 장애에 대한 인식을 달리 가져야 할 것이다.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장애 관련 서비스 전달을 위해서 병원 안에서 부터 장애인의 다양한 사회 활동 참여에 관한 부분을 지원하고 장애 등급 평가에 있어서도 단순한 의료적 소견이나 관찰에 의한 서류상의 평가가 아닌 실제 장애인의 활동 수행 능력 및 장애인의 실제 환경을 고려한 장애 평가가 이루어 져야 한다.

장애인을 영구적인 환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재활을 통해 자립해야 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그들이 빠른 시일에 퇴원을 하고 병원을 찾는 횟수를 줄이고 지역 사회에 더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재활의료서비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정봉근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시애틀 워싱턴대학 재활의학과에서 장애인 재활 및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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